[인터뷰] 조우진, '국가부도의 날' 이어 '마약왕' 포획하는 열일고수

에디터 용원중 입력 2018. 12. 18. 01:30 수정 2018. 12. 18.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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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터널 속에 있던 배우를 밝은 빛으로 꺼내준 '내부자들' 이후 빛의 속도로 성장한 조우진(39)이 2018년에 남긴 족적은 잰걸음이면서 뚜렷하다. 대작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여리고 정감 가는 구한말 통역사 얼굴을 빚어낸데 이어 400만 고지를 향해 줄달음질치는 영화 ‘국가부도의 날’에서는 부패한 엘리트 관료로, 19일 개봉하는 화제작 ‘마약왕’에서는 살인마 기운마저 감도는 냉소적인 범죄조직 보스로 변검을 시도한다.

‘국가부도의 날’ 속 그는 미국 유학파 출신의 재정국 차관 박대영으로, 진실을 은폐한 채 굴욕적인 IMF협상을 앞장 서 추진함으로써 자신의 권력 기반을 공고히 하려 든다. 국가부도 위기를 막으려 애쓰는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김혜수)와 사사건건 대립한다. 이기적이며 정의롭지 않은 관료의 표상을 생생하게 표현했다. 관객의 분노유발 게이지를 한껏 끌어 올렸다.

“명문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인물이다. 권력에 편승해 기득권자들의 세상을 위한 판짜기에 무던히 애쓰는 사람이다. 그런 반응이 나온다니 겸허히 칭찬으로 받아들이련다. 박대영이 그렇게 욕을 먹어야 한 팀장의 올곧은 마음과 행동이 빛을 발할 수 있고, 그래야 영화가 사는 거니까. 미리 각오는 했다.”

선과 악을 구분 지으려 하지 않았다. 오랜 시간 경제공부를 하고, 경제전문가로서 이력을 쌓아오다 정부 고위 관료직에까지 이르기까지 이 사람 안에 자리잡은 그릇된 신념이 정의로운 자의 사고와 행동의 대척점에 서야 한다고 여겼다. 그래야만 두 인물간 갈등이 최고조로 치달으면서 관객의 공분, 공감을 살 수 있을 거라 계산했다.

“그의 신념을 어떻게 드러낼까 많이 고민했다. 한 팀장이나 통화정책팀 앞에서는 지위의 차이에 따른 우월감을 표현하려 했다. 종합해보자면 그는 이 판을 정확하게 아는 인물 중 하나였다. 그 판을 알면서도 권력으로 무장까지 했으니 가장 여유로운 인물이 아니었을까. 확신에 차 있었을 테고. 본인 뜻대로 설계할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도 충만했을 것이다. 효과적으로 이를 전달하며 한 팀장과 불꽃 케미를 일으키려 했다. 세부적으로는 경제용어를 입에 붙이려 했고, 이성적인 경제학자보다 감정적인 정치인의 호흡으로 접근하려 노력했다.”

선배 김혜수와 사전 리딩을 하며 어떤 목표를 세우고 어떻게 부딪혀야 할지 대화를 나눴다. 현장 리허설에서는 자신의 액팅보다 리액션에 더 신경을 많이 썼다. 상대가 워낙 베테랑 배우라 긴장이 됐다.

“사람으로서, 배우로서 포용력이 무척이나 넓은 분이다. 단 한번도 불편하다고 내색한 적이 없다. 뭔가를 물어보면 ‘다 좋다’며 ‘자기 편한 대로 하면 돼’라고 하셨다. 연기하면 할수록 이 분의 포용력 덕분에 편해지면서 내 연기를 제대로 할 수 있었다.”

공교롭게 ‘미스터 션샤인’에서는 이병헌의 원어민 수준의 영어를, ‘국가위기의 날’에서는 김혜수의 유창한 영어를 지근거리에서 지켜봐야 했다.

“두 분 다 네이티브 스피커에 가까웠고. 똑 부러지는 영어를 구사한다. 이병헌 선배님은 극중 일상 영어를 많이 썼다. 할리우드 영화에 많이 출연하면서 영어권 배우들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눠오셔서인지 결이 굉장히 다르더라. 김혜수 선배님의 경우 경제용어가 들어가면 까다롭고 튀는데 너무 잘 소화하셨다. 누가 더 잘한다고 평가할 사안은 아닌 것 같다.”

1997년 IMF가 대한민국을 강타했을 당시 그는 재수생이었다. 사업을 하던 아버지의 고개가 점점 숙여지고, 어머니의 한숨 소리가 커지며 친척과의 왕래조차 줄어들었다. 가족구성원 모두가 경제활동에 돌입해야 했다. 모두가 어렵다는 아우성이 커질수록 교회 종탑은 점점 늘어났다. 연기에 대한 꿈을 위해 대학 연극영화과 진학 의지를 밝혔을 때 집안 어르신들은 실소를 금치 않았다. 그리고 20년이 흘렀다.

“이번 작품을 촬영하면서 반성을 많이 했다. 소수 몇몇에 의해서 경제정책이 좌지우지되는 것에 충격과 공포가 컸기 때문이다. 어른으로 산다는 것은 어려운 듯하다. 감당할 것, 책임져야 할 게 많다. 그 몫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닌 것 같다. 무조건 똑똑하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정치적 올바름만 가지고도 되는 게 아니고...”

‘마약왕’에선 국민배우 송강호와 호흡을 나눴다. 앞서 김혜수 이병헌을 비롯해 정우성 유지태 등 쟁쟁한 배우들과 공연하는 행운을 누려왔다.

“현장에서는 최대한 상대에 집중하려 한다. 좋은 결과물을 만드는 원동력이다. 그간 운 좋게 좋은 선배님들과 공연하며 그분들을 따라가다 보니까 그런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을까. 대중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는 그들은 연기력뿐만 아니라 상대 배우를 끌고 가는 능력이 탁월하다. 송강호 선배님은 경이로울 정도로 동물적이고 굉장히 유연하다. 그가 연기하면 모든 장면이 절로 완성된다. 치밀한 분석과 연륜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자연스러운 호흡으로 후루룩 쏟아낸다. 그간 경험하지 못한 쾌감이 발생한다.”

정우성, 유지태에게서는 큰 키 만큼이나 태산 같은 올곧음을 느꼈다. 정제돼 있으면서 바른 생각을 하고 실천에 옮기기에 닮고 싶다. 그들이 여력이 있어서 사회 봉사활동을 하는 게 아닐 거라 여긴다. 사람으로서 도리를 베푸는 것으로써 영역확장을 한다. 같은 배우가 봐도 넘치는 매력의 소유자인 이병헌은 더 친해지고 싶고, 닮아가고 싶은 대상이다.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선 데이터가 필요하다. 새로운 작품이나 인물을 통해서 공감을 일으키려면 세상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속 깊은 경험이 수반돼야 한다. 그래야 타인의 삶을 표현하는 게 가능해진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사람을 만나는 것도 무진장 좋아한다.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작품들을 접해보려 애쓰는 편이다.”

지난해 무려 9편의 작품에 출연하며 이경영, 김의성의 뒤를 잇는 '다작배우' '신스틸러' '명품조연' 평가를 들었다. ‘마약왕’뿐만 아니라 영화 ‘전투’를 촬영 중이고. ‘돈’은 내년 개봉 예정이다. 김혜수는 최근 인터뷰에서 “그토록 많은 작품에 출연하면서도 매번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놀라울 만큼 좋은 배우”라고 조우진을 극찬했다.

“캐릭터가 겹치는 데 대한 고민은 부질없다. 다르게 표현한다고 한들 내 의도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작품과 인물은 운명이라고 여긴다. 주어진 대로 열심히 하자고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비슷한 배역이더라도 조금 더 변주하고 입체화시키다 보면 이런저런 모습이 나오지 않을까. 그게 배우에게 주어진 숙제라고 여긴다. 매 작품 인물에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작품은 운명인 것 같다.”

국가부도의 날Default평점8.18.1점
감독
최국희
출연
김혜수, 유아인, 허준호, 조우진, 뱅상 카셀, 김홍파, 엄효섭, 송영창, 권해효
장르
드라마
개봉
2018.11.28
마약왕THE DRUG KING평점8.08.0점
감독
우민호
출연
송강호, 조정석, 배두나, 김대명, 김소진, 이희준, 조우진, 윤제문, 송영창
장르
범죄
개봉
2018.12.19

사진= 김수(라운드테이블),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에디터 용원중  goolis@sli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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