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톱10] 20세기 가장 위대한 여배우 10

김안나 입력 2018. 7. 6. 17:54 수정 2018. 7. 8. 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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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도 수백 수천의 배우들이 쏟아지는 할리우드에서 오래도록 이름을 남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훌륭한 연기, 영화계와 세계의 발전을 위한 사회 활동, 아름다운 외모 등 모든 것이 갖춰진 배우여야만 명예의 전당에 들 수 있다. 1999년 미국 영화 협회는 가장 위대한 남성 배우 25명과 여성 배우 25명을 선정해 발표했다. 예술가, 역사가, 비평가, 영화계 지도자 등이 선택한 역대 최고의 여배우 25명 중 톱10을 소개한다.

※ 배우들의 이름은 다음 영화 DB 표기에 따랐습니다. 


10. 조안 크로포드(1904~1977)

할리우드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여배우들 중 한 명으로, 1905년 미국 텍사스에서 태어났다. 1930~40년대 뭇남성들 사이에서 섹스심벌로 통했고, 연기력도 좋아서 1945년 <밀드레드 피어스>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능동적이고 당찬 성격으로 ‘할리우드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동시대 전설적인 배우 ‘제티 데이비스’와 사이가 좋지 않은 것으로 유명했다. 1974년 은퇴한 이후 3년간 췌장암을 앓다가 1977년 72세로 타계했다.


9. 마렌느 디트리흐(1901~1992)

독일의 전설적인 국민 여배우이자 할리우드 스타. 독특한 마스크와 허스키한 보이스로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1901년 베를린에서 태어났으며, 1930년 영화 <푸른 천사>의 주연을 맡으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1940년대 이후 할리우드로 건너가 가수이자 배우로 활동했는데 양쪽 모두 큰 성공을 거두었다. 옷을 잘 입어서 ‘디트리히 수트’라는 패션스타일을 유행시켰으며, 80세까지 20대 같은 몸매를 유지한 것으로 유명하다. 1992년 91세에 심부전증으로 별세하였고 고향인 독일에 안장되었다.


8. 주디 갈랜드(1922~1969)

‘주디 갈랜드’라는 이름은 잘 모를 수도 있지만,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는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아역배우일 때부터 인기가 있었다가 <오즈의 마법사>를 통해 전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으며 가창력이 뛰어나 뮤지컬계에서도 큰 찬사를 받았다. 빛나는 재능과 매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엘리자베스 테일러, 라나 터너, 에바 가드너 등 또래 미녀 배우들 사이에서 다소 평범한 외모를 가졌다는 이유로 깊은 열등감에 빠져 4번 결혼하고 전부 이혼하는 등 애정결핍에 시달렸다. 그녀를 보듬어주어야 할 어머니는 오히려 딸에게 성접대까지 종용하며 가혹하게 내몰았다. 결국 갈란드는 약물 남용과 알콜 중독에 빠져 활동하는 내내 고생하다가 1969년 47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했다. 주디 갈랜드가 숨을 거둔 날, 캔사스에는 대규모 토네이도가 발생했다고 한다. ‘영원한 도로시’가 떠난 것을 슬퍼하기라도 하듯.


7. 엘리자베스 테일러(1932~2011)

1932년 영국에서 태어난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이상적이고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여배우로 회자된다. 어느 각도에서 촬영해도 결점이 없는 완벽한 이목구비를 가졌다는 것. 아역배우로 시작했는데 어릴 때부터 예쁜 외모로 유명했다고 한다. 그러나 <버터필드8>(1961년),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1967년)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두 번 수상하면서 외모뿐만 아니라 연기력도 뛰어남을 입증했다. <젊은이의 양지>, <자이언트>, <클레오파트라> 등 찍는 영화마다 대히트를 했으며 1942년 데뷔 후 2001년 은퇴할 때까지 59년간 50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세기의 미녀로 불린 만큼 8번이나 결혼했으며, 2011년 3월 23일 심부전증 투병 중 타계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Elizabeth Taylor
수상
1993.제65회 아카데미 시상식 평생공로상 외 5건
작품
샌드 파이퍼(1965), 데브라 윙거를 찾아서(2002), 고인돌 가족 플린스톤(1994), 토스카니니(1988), 엔터테인먼트(1974), 녹원의 천사(1944), 쿼바디스(1951), 아이반호(1952), 내가 마지막 본 파리(1954), 신부의 아버지(1950),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1966), 클레오파트라(1963), 자이언트(1956), 젊은이의 양지(1951), 비밀(1968), 고백(1986), 위험한 여로(1967), 말괄량이 길들이기(1967), 호걸 브롬멜(1954), 화려한 사랑(1972), 나이트 워치(1973), 엔터베 특공작전(1976), 레인트리 카운티(1957),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1958), 거울 살인 사건(1980), 버터필드 8(1960), 작은 아씨들(1949), 지난 여름 갑자기(1959), 아버지의 인생(1947), 파랑새(1976), 파우스트(1967), 황금 눈에 비친 모습(1967), 해머스미스 이즈 아웃(1972), 용감한 래시(1946), 래시 컴 홈(1943), 디즈 올드 브로드(2001), 앤 더 밴드 플레이드 온(1993), 스위트 버드 오브 유스(1989), 맬리스 인 원더랜드(1985), 비트윈 프렌즈(1983), 리틀 나이트 뮤직(1977), 댓츠 엔터테인먼트, 파트 2(1976), 엘리자베스 테일러: 할리우즈 차일드(1975), 애쉬 웬즈데이(1973), 어라운드 더 월드 오브 마이크 토드(1968), V.I.P.s(1963), 러브 이즈 베터 댄 에버(1952), 줄리아 미스비헤이브(1948), 데이트 위드 주디(1948), 더 배틀 오브 암파르(2013), 언더 밀크 우드(1972), 거상의 길(1954)


6. 마릴린 먼로(1926~1962)

마릴린 먼로는 가장 위대한 여배우를 넘어 가장 위대한 대중문화 아이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녀는 1950년대 할리우드를 상징하는 최고의 연예인이며 전 세계 남성들의 섹스심벌이었다. 1950년 <아스팔트 정글>, <이브의 모든 것>에 출연하며 배우로서의 자질을 인정받았고, 1953년 <나이아가라>의 주연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는다. 대중들이 자신에게 기대하는 모습은 똑똑하고 당찬 여성이 아니라 ‘멍청한 금발 미녀’라는 것을 알고 공적인 자리에서는 일부러 백치미처럼 ‘연기’했다는 사실은 유명한 일화다. 과거 양부모에게 성추행 당했던 과거를 고백하며 여성운동에 많은 관심을 보였으며, 인종차별과 성차별에 반대하는 등 진보적인 스탠스를 드러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케네디와 염문설이 있었는데, 1961년 8월 5일 향년 36세의 나이에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사망했다.


5. 그레타 가르보(1905~1990)

스웨덴을 대표하는 여배우이자 ‘은막의 여왕’으로 불리는 배우. 무성영화와 유성영화의 과도기를 이끌며 양쪽 모두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무성영화에서 이미 최고의 스타였던 그녀는 유성영화로 넘어와서도 <안나 크리스티>, <마타하리>, <그랜드 호텔>, <안나 카레니나>, <춘희> 등 명작들에 출연했다. 그녀는 스크린 바깥에서도 대중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사생활마저 하나의 스토리가 되는, ‘할리우드 스타’의 정의에 부합하는 최초의 배우였다.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던 1941년, 36세의 가르보는 <두 얼굴의 연인>을 끝으로 갑작스럽게 은퇴를 선언했는데, “늙어버린 모습을 팬들에게 보이기 싫다”는 이유였다. 은퇴 후 뉴욕의 대저택에서 사교계 인사들과 어울리며 살다가 1990년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4. 잉그리드 버그만(1915~1982)

1915년 스웨덴에서 태어나 1940년대 영화계를 풍미한 명배우. 1942년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 중 하나인 <카사블랑카>에 출연하면서 스타가 되었다. 미국인들에게는 국민 여배우로서 ‘만인의 연인’과 마찬가지였고, 잔다르크를 즐겨 연기한 덕분에 프랑스에서는 ‘잔다르크의 환생’이라 여겼다고 한다. 스웨덴어는 물론 독일어, 프랑스어, 영어, 이태리어에 능통해 유럽 전역에서 활동했다. TV, 영화, 연극 등 장르 불문 수많은 명작들에 출연하여 명연기를 선보인 덕분에 에미상, 아카데미상, 토니상을 모두 수상했다. 특히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페르소나로서 여러 작품을 찍었다.

1940년대 후반 이태리 영화감독 로베르토 로셀리니와 불륜에 빠지는 바람에 할리우드에서 추방당했다. 6년 후 <아나스타샤>로 복귀해 <가스등>(1944년)에 이어 두 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다. 로셀리니와도 이혼하였다. 1972년 유방암 선고를 받았음에도 연기에 매진, 1974년에는 <오리엔트 특급살인>으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날은 바로 자신의 생일인 1982년 8월 29일로, 친구들과 생일파티를 한 뒤 잠을 자던 중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3. 오드리 헵번(1929~1993)

세상에 그녀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오드리 헵번’은 아름다움의 화신이자 대명사로 20세기 대중문화의 아이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29년 태어난 그녀는 24세 때인 1953년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영화 <로마의 휴일>에 출연하면서 세계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한다. 지적이며 고전적인 미모와 영어, 스페인어, 이태리어,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지성으로 대중들에게 센세이션을 일으켰으며 헵번의 메이크업, 헤어스타일, 옷차림은 현대에 와서도 꾸준히 유행하고 있다. 1954년 <로마의 휴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1950~60년대 ‘리즈 테일러’, ‘그레이스 켈리’와 함께 엄청난 명성을 누렸다. 대중문화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TV, 음악, 영화, 무대공연 등 연예계를 대표하는 네 시상식에서 모두 수상함으로써 EGOT* 클럽 회원이 되었다. EGOT 클럽 회원은 미국 연예계 역사상 열두 명 밖에 없다고 한다. 1988년 영화계 은퇴 후 봉사활동에 매진하던 중 1993년 흡연으로 대장암이 발병하면서 64세에 세상을 떠났다.

*EGOT : ‘에미(EMMY)’ ․ ‘그래미(GRAMMY)’ ․ ‘아카데미(ACADEMY)’ ․ ‘토니(TONY)’


2. 베티 데이비스(1908~1989)

1908년 메사추세츠에서 태어난 ‘베티 데이비스’는 고전 할리우드 황금기를 대표하는 스타다. 여배우는 무조건 아름다워야 했던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다소 평범한 외모의 한계를 연기력으로 극복하며 주인공부터 악역까지 다양한 배역을 소화한 것으로 유명하다. <댄저러스>(1935년)와 <제저벨>(1938년)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두 번 수상했다. 사회에 관심이 많아 인종차별과 여성차별에 반대했으며, 배우에 대한 제작사의 대우가 형편없자 소송을 제기해 승소하는 등 영화계 내부 발전을 위한 활동도 활발히 했다. 지금보다 훨씬 남성 중심적이었던 당시 할리우드에서 제작사건 감독이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직언을 퍼붓는 등 자신의 목소리를 분명히 낸 배우였다. 1983년 유방암 수술 후에도 연기를 놓지 않다가 1989년 합병증이 악화되어 세상을 떠났다.


1. 캐서린 헵번(1907~2003)

20세기를 대표하는 가장 위대한 여배우 1위의 영예는 ‘캐서린 헵번’이 차지했다. 그녀는 1907년 미국 코네티컷 주에서 태어나 2003년 고향에서 사망했다. 1932년 <이혼 청구서>로 데뷔한 이래 60여 년간 영화계에서 활동하면서 <아침의 영광>(1932년), <초대받지 않은 손님>(1968년), <겨울의 사자>(1969년), <황금 연못>(1982년) 등 아카데미 여우주연상만 4번 수상한 명배우였다. 그녀가 유명한 것은 연기력뿐만 아니라 사회의 통념을 거부하는 진취적인 성향 때문이었다. 여성은 당연히 치마를 입어야 한다는 시선을 거부하고 바지를 즐겨 입었으며 베티 데이비스와 같이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주장하는 등 여배우들에게 요구되는 ‘얌전하고 조신한’ 이미지를 완전히 깨버린 최초의 여성이었다.

2위를 차지한 베티 데이비스와는 라이벌 관계로 ‘메릴 스트립’과 얽힌 인연이 재미있다. 메릴 스트립이 영화계에 등장했을 당시 캐서린 햅번은 스트립의 연기를 “기계적”이라고 비판했으나, 베티 데이비스는 스트립을 자신의 “후계자”라고 칭찬하며 적극적으로 이끌어 주었다고 한다.

영화계의 ‘퍼스트 레이디’로 불린 그녀는 평생 독신으로 살며 87세까지 연기활동을 하다가 2003년 96세로 타계했다.


페이퍼백 에디터|김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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