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고 쫓기는 자들 쫓는 쾌감..'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CBS노컷뉴스 최영주 기자 입력 2020. 8. 5. 06:33 수정 2020. 8. 20.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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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리뷰]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감독 홍원찬)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 스포일러 주의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달리는 자, 그런 이를 죽이기 위해 뒤를 쫓는 자, 그리고 이들을 쉴 새 없이 뒤쫓는 카메라. 남은 일은 인물과 카메라가 만들어내는 화려하고 타격감 넘치는 추격전을 관객들이 쫓는 것뿐이다. 장르에 충실한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를 통해 말이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감독 홍원찬)는 마지막 청부살인 미션 때문에 새로운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인남(황정민)과 그를 쫓는 무자비한 추격자 레이(이정재)의 처절한 사투를 그린 하드보일드 추격액션 영화다.

영화는 시작부터 인남의 현실을 짧고 굵게 보여준다. 계약에 따른 살인을 마무리한 청부살인업자. 그 공허한 눈은 인남의 현실이 그의 무채색 옷만큼 색이 없는 세상임을 알려준다. 그런 인남이 존재하는 일본은 시종일관 우울하고 어두운 톤을 띤다.

그런 인남의 단골 술집에 걸린 그림 속 파나마 해변, 그 속으로 걸어가는 한 남자의 모습은 무채색 현실을 사는 인남의 쓸쓸함과 어딘가 닮아있다. 인남은 무작정 그림 속 장소인 파나마로 떠나기로 한다.

그러나 여기서부터 일이 꼬인다. 과거 자신이 끝까지 지켜주지 못한 존재 영주(최희서)와 사이에서 얻은 딸이 납치된 소식을 알게 된 인남은 딸을 구하러 간다. 그리고 마지막 청부살인 미션을 통해 악연으로 얽히게 된 레이가 인남을 뒤쫓으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동시에 이때부터 카메라도 쫓기는 자 인남을 추격하고, 본격적인 액션이 펼쳐진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무엇보다도 현실적인 액션과 타격감을 통해 장르적 쾌감을 극대화한다.

이를 위해 여러 대의 카메라를 활용해 한 테이크로 가고, 스톱모션 기법을 이용해 타격의 순간이 관객들 눈에 생생하게 맺히도록 했다. 빠름과 느림 사이 완급 조절을 통해 찰나의 타격을 포착하고, 긴장감을 유지하려 했음을 볼 수 있다.

쫓고 쫓기는 것은 인남과 레이만이 아니다. 이들의 몸짓 하나하나를 세세하게 쫓는 카메라의 시선 역시 추적의 한 축이다. 액션 영화의 미덕 중 하나가 인물들의 육체적인 움직임을 통해 전달되는 쾌감이라면, 이를 현실적으로 충실하게 전달하기 위해 카메라가 어떻게 인남과 레이를 뒤쫓는지를 보는 것 역시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재미 중 하나다.

시각만큼 청각적 쾌감도 상당하다. 영화는 주먹이 상대에게 꽂히며 타격하는 순간에 맞춰 터지는 타격음, 칼과 총이 사용되는 순간 등 사운드에도 공을 들였다. 이를 통해 관객들에게 생생함을 전하는 것은 물론 바로 그 순간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다. 때로는 쨍쨍하면서도 강렬한 소리가 상상력을 자극해 보이는 것 못지않게 긴장을 유발한다.

한국, 일본, 태국을 오가는 영화의 미장센도 눈을 즐겁게 한다. 채도 낮은 푸른색과 붉은색의 한국, 어둡고 차가운 톤의 일본, 채도 낮은 노란색과 빛바랜 톤의 태국 등은 각 장소가 가진 분위기를 한껏 살려낸다.

공허한 인남과 인남이라는 사냥감을 발견하기 전 레이가 존재했던 일본, 인남의 인생이 격변했던 인천, 인남과 레이가 마주하고 추격전을 벌이며 불안한 상황이 이어지는 태국 등 각 나라가 가진 색은 각 인물과 그들의 감정, 상황과도 닮아 있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간결한 내러티브 대신 액션과 그 액션을 구현하는 캐릭터가 강렬하다. 특히 극 중반 인남의 조력자로 나오는 유이(박정민)는 어째서 영화가 예고편은 물론 모든 곳에서 그를 숨겨왔는지 납득하게 만든다. 유이는 또한 영화 초반부터 이어지는 팽팽한 긴장감을 누그러뜨리며 관객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도록 돕는다.

간단해 보이는 이야기 구조 안에서도 감독은 영화 제목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 담긴 말뜻처럼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한 채 이방인처럼 살아가는, 세상과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인물들의 '구원'에 관해서도 말하려 한다.

제목처럼 종교적 의미의 구원은 힘들지 몰라도, 누군가를 죽이기만 했던 이에게 구원은 누군가를 살리는 게 될 수도 있다. 외면받고, 외면해야 했던 이에게는 누군가를 돌아보고 손을 내미는 것 자체가 구원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백정'이라는 또 다른 이름처럼 누군가를 죽여야 삶의 의미를 찾는 레이에게는 사냥감 인남의 존재 자체가 구원이었는지도 모른다.

화려한 추격 액션을 스크린에 최종적으로 구현해 낸 배우 황정민, 이정재, 박정민의 열연이 어느 때보다 돋보인다. 외모와 옷차림, 각 배우가 구현한 액션 스타일을 눈여겨본다면 인남과 레이가 어떤 인물인지, 이를 위해 배우들이 어떤 고민을 했는지 포착할 수 있다.

누군가를 구하기 위한 여정, 이를 쫓는 자의 등장과 대결 등이 주는 기시감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영화계 베테랑들이 모여 만든 캐릭터와 액션, 미장센은 큰 만족을 선사한다.

8월 5일 개봉, 108분 상영, 15세 관람가.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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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최영주 기자] zoo719@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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