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애의 영화이야기] 영화 '자유만세'가 변형된 이유

현화영 2020. 7. 11.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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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자유만세’(감독 최인규, 1946) 포스터. 네이버
 
지난번 칼럼에서 1939년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감독 빅터 플레밍)를 소개하는 내내 생각난 우리 영화가 있다. 바로 최인규 감독의 1946년 영화 ‘자유만세’다. 최인규 감독이 해방 직전까지 친일 영화를 만들다가 해방 직후 만든 항일영화라고 소개했던 적이 있는데, 오늘은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 얘기해볼까 한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이 미국 내 스트리밍서비스 HBOmax에서 잠시 사라졌다가 돌아온 건과 관련해서, 특정 장면을 편집하는 논의가 진행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안다. 그러나 그런 의견을 제시한 이들이 있었다고 들었다. 아마도 SNS나 댓글 등을 통해 즉흥적으로 표현된 의견이라고 짐작하는데, 관점에 따라 매우 심각한 문제로 해석할 수 있다. 선을 넘은 의견일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영화에 대해 호평이나 혹평 모두 자유롭게 할 수 있다. 고소 고발을 하는 것도 자유다. 일단 표현은 하게 두고, 이후에 평가하고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표현의 자유가 존중되고 있다. 반면에 표현 자체를 못하게 한다거나, 표현한 것에 대해 고치라고 강요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 표현의 자유 침해는 물론 폐해도 크다. 영화 ‘자유만세’가 바로 그 증거이다. 

해방 다음해인 1946년 국내에서 제작된 영화는 딱 4편이다. 그중에 현재 필름이 남아있는 영화는 ‘자유만세’ 뿐이다. 이 영화는 광복 후 첫 흥행작이었다. 제목에 드러나지만 광복 직전을 배경으로 해 독립운동가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다. ‘거사’를 준비하다가 체포되고, 탈출하는 내용이다.  

요즘 영화와 비교도 안 되는 소박한 스케일이지만, 당시 영화인의 입장에서 보면, 한동안 일본어 대사의 친일 영화만 제작하다가 맞이한 자유를 만끽한 영화다. 그런데 현재 남아있는 영화의 만듦새가 좀 이상하다. 

먼저 줄거리가 뚝뚝 끊긴다. 추가 설명을 듣지 않으면 이해가 안 될 정도다. 심지어 중간 중간 NG 컷으로 추정되는 컷도 들어가 있다. 엔딩도 이상하다. 주인공이 도망치다 갑자기 끝난다. 한껏 긴장감을 유발하는 배경 음악이 흐르고 있었는데, 모든 것이 그냥 뚝 끝난다.  

1945년 여름을 배경으로 한 영화인데, 독립운동가인 주인공들이 ‘조선사람’이 아니라 ‘한국사람’이라고 말한다. 영 이상하다. 당시 흥행도 됐고, 대만에 수출까지 된 영화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오래 되서 화질이 떨어지고 한 차원이 아니다.  

사실 현재 남아있는 영화가 1946년 개봉 버전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후 제작자가 나름의 의도로 자발적으로 수정을 한 버전도 아니다.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자유만세’는 검열에 의해 변형된 버전이다. 

1948년 검열을 다시 받으면서 꽤 많은 장면들이 삭제됐다. 그 사이 월북한 배우 독은기 등이 문제가 되면서, 그들이 나오는 장면이 삭제됐다. 예를 들어 독은기가 연기한 남부는 주인공을 일본군에 고발하고, 이후 최후의 결투를 벌여야 하는 인물인데, 몇몇 장면에서 뒷모습 정도만 남고 사라지니, 이야기가 뚝뚝 끊기게 된 것이다. 심지어 영화 초반 자막에서 조차 이름이 사라졌다.

이후 1970년대 재상영을 추진하며 재녹음도 추가로 진행된 듯한데, 그때 대사 중 ‘조선’이라는 단어가 ‘한국’으로 대체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로서는 합법적 절차에 의한 처리였겠지만, 남북한 분단 상황이 오고, 반공이 강조되는 시절이 맞아, 월북한 배우가 출연한 영화를 원래 모습대로 상영하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았던 역사가 변형시킨 영화 ‘자유만세’인 것이다.  

일제강점기부터 1996년 헌법재판소의 판결까지 국내에서 영화를 제작하고 개봉하는 데에 표현의 자유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4.19와 5.16 사이에 잠시 자유가 존재했었다.) 조선총독부, 미군정, 대한민국 정부 차원의 사전 검열이 시행됐다. 권력자의 기준에 따른 특정 장면 삭제, 대사 삭제, 제목 변경, 더 나아가 상영 금지 등이 법적 근거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최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이슈에서 지나친 연상 작용인지도 모르겠다. ‘자유만세’의 원래 버전이 남아있지 않기에 더욱 그런 것 같다. 덕분에 우리 역사를 체감할 수 있기는 하다. 

무조건 원래 버전 혹은 오리지널 버전만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제작자들 자발적인 수정이나 리메이크는 동의하지만, 그 외의 수정은 정말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얼마든지 재평가, 재해석 등의 자유를 누릴 수 있으니 말이다. 

송영애 서일대학교 영화방송공연예술학과 교수    

※ 위 기사는 외부 필진의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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