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가 없애버린 마을.. 할머니들의 은밀한 투쟁
[오마이뉴스 권진경 기자]
▲ 제2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23회 서울인권영화제, 제23회 인디포럼 상영작 <기프실>(2018) 한 장면 |
ⓒ 오지필름 |
제2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한국장편경쟁 상영작 <기프실>(2018)의 배경이 된 경북 영주시 평은면 기프실 마을은 영주댐 건설로 수몰된 지역이자, <기프실> 문창현 감독의 친할머니와 아버지 형제가 나고 자란 집안의 뿌리이다.
다른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감독에게 기프실 마을은 할머니가 살고 있는 한적한 시골이었다. 하지만 할머니의 집이 4대강 사업으로 허물어진다는 소식을 감독이 접하는 순간, 기프실은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카메라에 담아 기억하고 싶은 공간으로 체화된다. 문창현 감독에게 기프실은 할머니와의 많은 추억이 깃든 의미있는 장소이자, 4대강 사업으로 파괴되고 소멸되는 지역이다.
할머니가 살던 집이 영주댐 건설로 수몰된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부터 감독은 할머니의 집과 기프실 마을을 카메라에 조심씩 담았다. 감독이 본격적으로 촬영을 시작한 것은 기프실에 살았던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부터다. 병환 중이었던 감독의 할머니는 오래 살던 집을 떠나 요양원에 머물렀고, 죽어서야 비로소 기프실 집을 찾는다. 할머니는 떠나고 없지만 감독은 기프실에 대한 기록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철거 직전까지 마을을 지켰던 노년의 여성들
▲ 제2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23회 서울인권영화제, 제23회 인디포럼 상영작 <기프실>(2018) 한 장면 |
ⓒ 오지필름 |
<기프실>은 철거 직전까지 마을을 지켰던 할머니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감독의 친할머니는 기프실 마을을 떠나고 없지만, 감독은 마을에 남아있는 다른 할머니들과 관계를 맺으며 영주댐 건설로 사라진 기프실을 기억하고자 한다.
영화의 시작은 4대강 사업에 대한 문제 의식에서 출발한다. 오프닝부터 엔딩 타이틀이 올라갈 때까지 <기프실>은 평화롭고 아름다웠던 마을을 송두리째 지워버린 4대강 사업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잃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4대강 정책을 향해 직설적이고 강경한 목소리를 내는 대신, 영주댐 때문에 삶의 터전을 잃은 할머니, 학교를 떠나야하는 어린 학생들, 폐허로 남은 흔적들을 보여주며 한국형 녹색 뉴딜로 추진된 4대강 사업의 허실을 조용히 꼬집는다.
4대강 사업이 영주댐 건설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기프실 마을에 대한 감독의 관심을 환기 시켰다면, 감독의 친할머니와 얽힌 사적 기억과 마을 할머니들과의 유대 관계는 기프실에 대한 감독의 애착을 끌어올린다. 몇몇 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영주댐 건설이 기정사실화된 현실에서 감독이 기프실 마을과 주민들을 위해 할 수 있었던 것은 카메라로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이었다.
소멸된 공간과 사람에 대한 향수 극대화하는 다큐
▲ 제2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23회 서울인권영화제, 제23회 인디포럼 상영작 <기프실>(2018) 한 장면 |
ⓒ 오지필름 |
지나간 과거는 되돌릴 수 없겠지만,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정부 실책 하에 조용히 사리진 소중한 것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 그런 점에서 댐 건설을 위해 닦은 신작로 옆의 공터에 싹을 틔우며 땅을 지키고자 하는 할머니들과 이를 고스란히 담아내며 할머니들의 은밀한 투쟁을 지지하는 감독의 카메라는 여러모로 닮아 있다.
<기프실>은 자신의 사적 기억에 관한 내밀한 고백을 통해 비슷한 기억을 가진 관객들의 공감대를 이끌고, 여성(감독)과 여성(기프실 할머니)이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성장 중심 개발 정책의 허상을 파헤치는 인상적인 다큐멘터리 영화다. 문창현 감독의 <기프실>은 서울국제여성영화제, 23회 서울인권영화제 상영 이후 오는 14일까지 열리는 제23회 인디포럼에서 관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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