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노역에 강제결혼까지, 박정희 정권판 '군함도'

2018. 5. 23.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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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정부판 군함도 사건."

오는 24일 개봉하는 이조훈 감독의 다큐멘터리 <서산개척단> 은 박정희 정권이 '대한청소년개척단'이라는 이름으로 납치해 서산 간척사업에 무임금으로 강제 동원한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박정희 정권이 자행한 갖가지 인권유린이 언론보도와 과거사 조사 등을 통해 속속 드러났음에도 서산개척단 사건이 침묵 속에 가려져 있었던 이유는 당시 정권이 이들에게 부랑자·윤락녀 등의 딱지를 붙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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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영화 '서산개척단'-
5·16쿠데타 뒤 국가재건 명분
간척사업 끌려간 1700명 청년
폭력·굶주림에 100여명 목숨 잃어

사라진 '토지 무상배분' 약속
부랑자·윤락녀 딱지 두려워
속앓이만 한 57년 세월

'피해자 목소리' 오롯이 전해
이조훈 감독 "정부 사기사건..
피해자 보상은 정의의 문제"

[한겨레]

영화 <서산개척단>의 한 장면. 인디플러그 제공

“박정희 정부판 군함도 사건.”

오는 24일 개봉하는 이조훈 감독의 다큐멘터리 <서산개척단>은 박정희 정권이 ‘대한청소년개척단’이라는 이름으로 납치해 서산 간척사업에 무임금으로 강제 동원한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무려 57년 동안 잊힌 이야기를 ‘역사’ 앞으로 불러낸 것은 그분들 스스로가 낸 용기였다”는 감독의 말처럼, 처음엔 머뭇거리며 진실을 드러내길 꺼리던 그들은 점차 목소리를 높여 말한다. “제발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서산개척단으로 불리는 대한청소년개척단의 시작은 박정희 정권의 ‘5·16 쿠데타’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통성 없는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정권은 국가재건과 부랑아 단속을 명분으로 수많은 청년(혹은 청소년까지)을 잡아들여 서산 간척사업에 동원한다. ‘원활한 국토개발 사업’을 진행한다며 끌고 간 이들은 약 1700여명에 이르며, 국가가 자행한 폭력과 강제노역, 상상할 수 없는 인권유린 앞에 이를 이기지 못하고 죽어간 이들이 줄잡아 100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영화 <서산개척단>의 한 장면. 인디플러그 제공

피해자는 남성들뿐만이 아니다. “공장에서 일하게 해준다”고 유인해 여성들을 서산간척단으로 끌고가 간척단 남성들과 강제 합동결혼식까지 시킨다. ‘255쌍 합동결혼식’은 정권홍보용 차원에서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된다.

심지어 박정희 정권은 간척사업을 명분으로 미국 원조금(PL-480)까지 받아내지만, 그 돈을 간척사업운영자금이 아닌 정권유지용 선거자금 등으로 횡령한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정부가 서산개척단원들에게 “간척한 토지를 1인당 3천평씩 무상배분한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데 있다. “내 땅이 생긴다”는 작은 희망 하나로 폭력과 굶주림 등 “짐승보다 못한 생활”을 견딘 이들에게 돌아온 것은 “국유지로 편입됐으니 그간 토지를 사용한 임대료를 내라”는 통보뿐이었다. 피해자들은 오늘날까지 임대료를 내면서 땅을 되찾기 위해 땅값을 분할 납부하고 있다. 그 짐은 아버지 세대를 지나 아들 세대에까지 대물림되고 있다.

영화 <서산개척단>의 한 장면. 인디플러그 제공

박정희 정권이 자행한 갖가지 인권유린이 언론보도와 과거사 조사 등을 통해 속속 드러났음에도 서산개척단 사건이 침묵 속에 가려져 있었던 이유는 당시 정권이 이들에게 부랑자·윤락녀 등의 딱지를 붙였기 때문이다. 피해자 정영철(77)씨는 울부짖는다. “박정희 대통령이 나라는 살렸는지 몰라도 사람은 한없이 죽였다”고.

이조훈 감독은 대학 후배인 유일용 <한국방송>(KBS) 피디의 제보로 사건을 취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감독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서산 출신인 유 피디가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에게 토막토막 들었던 이야기를 지난 2013년 나에게 전했다. 당시는 박근혜 정권이 위세등등하던 시기라 방송을 할 수 없으니 독립다큐를 만들던 내게 아이템을 토스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감독은 유 피디의 아버지로부터 서산에 남아 있는 피해자들을 한 명씩 한 명씩 소개받으며 무려 4년6개월 동안 이 사건을 취재했다. “박근혜 정부 아래에서 개봉이 힘들다고 판단했던 것이 오히려 시간을 들여 사건을 꼼꼼히 취재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영화 <서산개척단>의 한 장면. 인디플러그 제공

영화는 내레이션 등의 개입을 철저히 배제한 ‘시네마베리테’ 기법으로 촬영됐다. 이 감독은 “감독의 전지적 시점을 걷어내고 등장인물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역사를 말하고 재구성하도록 하는 방식을 취했다. 피해자들이 이 문제를 입 밖으로 드러내야 한다는 자기확신을 갖도록 하는 데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조훈 감독이 지난 9일 전주 한국전통문화전당에서 열린 전주국제영화제 시상식에서 다큐멘터리상을 받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페이스북 갈무리

영화를 찍으며 이 감독은 “이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가로 다시 태어난 기분”이라고 했다. 청와대 앞 시위, 서명운동, 국회 청원운동 등을 모두 피해자들과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목적이 분명한 영화다. 국가재건의 명분으로 자행된 정부의 사기사건에 희생당한 피해자들이 적절한 보상을 받는 것이다. 시위 때마다 태극기를 흔드는 분들이 많이 보시길 바란다. 이는 진보·보수의 문제가 아닌 ‘정의’의 문제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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